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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창조 시대의 대학 교육 (조벽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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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창조 시대의 대학 교육과 관련된 조벽교수 원고글 입니다.

 

http://www.me.mtu.edu/~peckcho/article/SNUctl.htm

 

3 8 서울대 CTL 개소식 강연

지식 창조 시대의 대학 교육

조벽

미시간 공대 기계과 교수

옴부즈맨

지식 창조 시대의 대학교육, 제 주제를 넘어도 한참 넘은 이 주제를 부탁 받고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고민을 많이 한 나머지 못생긴 얼굴에 뾰두라지까지 나고 말았습니다. 고민을 하던 중에 제가 옴부즈맨 직책을 받게 되었을 때 저의 대학교 부총장님께서 제게 주신 선물이 생각났습니다. 재미난 어린이 장난감인데 자신이 부총장이 되었을 때 자기 전임으로부터 받은 선물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 톡 튀어나온 놈을 망치로 딱 쳐서 가라앉히면 다른 놈이 튀어 오릅니다. 새로 튀어 오른 놈을 톡 치면 이번엔 또 다른 놈이 튀어 오릅니다. 옴부즈맨의 일에는 끝이 없을 것이라는 말을 유머로운 선물로 전해 주신 것입니다.

제가 생각해보니까 요즘 교수님들에게도 적합한 것 같습니다. 한동안 학부제 때문에 힘을 많이 쓰셨는데, 새로 연봉제라는 놈이 튀어 올라 괴롭힙니다. 그래서 연봉제라는 놈을 또 딱 때리니까 이번에는 연구를 많이 하라는 연구실적평가라는 놈이 튀어 오르고, 연구를 열심히 하다보니까 Teaching Center가 생겨 가지고 교육도 잘하라고 합니다.

제가 이 장난감을 서울대 교수학습개발센터에 선물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강의 못하는 교수님을 이렇게 때려 주라는 것이 아니고, 이 장난감을 보면서 이 센터를 찾으러 오신 교수님은 정말로 없는 시간을 쪼개서 본인의 강의 기술을 향상하시러 오신 분이라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의 시간이 헛되지 않도록 1시간, 1분, 1초를 아끼면서 열심히 도와주시라고 부탁드리면서 이 선물을 김영수 센터 소장님께 드리겠습니다.

지금 말씀 드린 것과 같이 새로운 시대에 이미 접어든 지금 이 때, 우리가 교육을 생각한다면 강의실 교육만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연봉제, 학부제, 교수업적평가제 등 이 모든 것을 복합적으로 고려해야만 참다운 교육을 위한 정책이 나올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내용은 오늘 다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 특강은 오늘의 주인공인 교수학습개발센터에 초점을 맞추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교육이동'

제가 교육에 관해서 생각을 시작한 것은 1990년도 '권력이동'이라는 책을 접하면서부터 입니다. 다 아시다시피 "농경시대가 산업화시대로 가서 지식 정보화시대로 간다. 그래서 '무력과 돈보다는 지식이 중요한 시대다."라고 엘빈 토플러가 말하였습니다.

이 책을 읽고 제가 교수 생활을 하면서 시대가 이동하고 권력이 이동하면 반드시 교육도 이동할 것이라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94년도 서울대 객원 교수로 나와 있을 당시 교육부 공무원들에게 강연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교육의 초점이 초중고에서 대학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교육이동'을 설명하고, "새 시대의 교육의 기본 바탕은 '다양화, 특성화, 자율화'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이것은 모두가 다 아는 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뜻을 새기지 않고 그저 흥얼거리는 유행어처럼 되었다는 말은 거꾸로 이 단어들의 뜻이 우리에게 깊이 와 닿지 않게 되어 버리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예를 들어 다양화만 하더라도 매우 잘못 인식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94년도 한국에 나왔을 때 학부제 문제를 둘러싸고 상당히 혼란스러웠습니다. 학부제는 유사한 학과들을 통합해서 학생들한테 다양한 학습과 진로의 선택권을 주자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런데 시대 흐름에 걸맞는 학부제가 왜 한국에 와서는 이토록 힘들어할까요? 저는 '다양화'가 목표인 학부제를 너무 '획일적'으로 밀어 붙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목표와 방법이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마 이런 심한 부작용이 생기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진정한 다양화를 원한다면 학부제를 하는 대학이 있을 수 있고, 안 하는 대학도 있어야 하겠습니다. 또, 한 대학 안에 학부제를 하는 단과대학이 있을 수가 있고, 하지 않는 단과대학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결국, 다양화를 획일적으로 유도하려는 모순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고 판단됩니다.

이렇듯 지식지반시대의 기본 개념이 정돈되지 않은 상태에서 새시대 교육에 대해 말씀드리기가 어렵지만, 지금부터는 '교육이동'이 대학에 요구하는 변화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교육이동'이 요구하는 대학

제가 미국 공학교육 학회에 쭉 참가하면서 관찰한 점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80년대에는 공학교육학회에 논문을 제출하는 것이 불과 한 100편, 많아야 200편, 그리고 그 논문을 쓰는 교수님들은 주로 교육중심대학에 계시는 교수님들이었습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와서 논문이 매해 500편 이상 나옵니다. 그뿐 아니라 연구중심대학의 교수님들이 많이 참여를 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변화의 예를 들겠습니다. 미국과학재단(NSF)은 이공계에 연구비를 막강하게 지원을 해 주는 곳인데, 1990년부터는 공학 교육에 대한 연구를 집중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대학들이 협의체(coalition)를 이루고, 과학재단은 매 협의체마다 5년 동안 천만 불이라는 많은 돈을 지원했습니다. 교육연구협의체에 참여하는 대학은 교육중심대학 뿐만이 아닙니다. Stanford, Cornell 등 연구중심대학 중에서도 톱 연구중심대학들이 참여를 하고 있습니다.

MIT에서는 94년도에 공대 교수님을 석좌 교수로 모셨습니다. 그런데 공학 기술 연구를 많이 했기 때문이 아니라 공학 "교육"에 관해 큰 성과물을 낸 교수님을 "교육 석좌 교수"로 모신 것입니다. 그리고 96년도에는 "앞으로 25년을 내다본 기계 공학의 교과과정에 대한 디자인"이라는 주제로 전국적으로 워크샵을 주도했습니다. 연구중심대학에서, 그것도 최고 연구중심대학에서 갑자기 교육에 대한 관심을 보일 뿐만 아니라 교육 혁신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너무 공학의 경우만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공학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Stanford의 경우에는 96년도에 "교육 선언"을 했습니다. 앞으로 Stanford에서 20명의 교수님을 새로 모집할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더 많은 연구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교육에 충실하기 위해서하고 합니다. 교육도 신입생을 담당할 수 있는 교수를 뽑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1000만 불을 교육에 투자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그 당시 대학가를 놀라게 한 대대적인 뉴스 거리였습니다.

하버드에 강의지원센터가 있는데 하버드 대학의 교수와 강사들이 매해 200명 이상 자신의 강의하는 모습을 비디오로 찍어서 개선하려고 노력한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보이어 블루리본패널은 "Reinventing Undergraduate Education: A Blueprint for America's Research Universities"라는 책자를 발간했습니다. 연구중심대학에서 학부 교육을 변신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책자가 지금 대학 사회에서 베스트 셀러가 되어 있습니다.

연구중심대학마저 교육에 앞장서는 이유

과연 왜 그럴까요? 뭔가 의미심장하지 않습니까? 왜 이런 큰 변화가 90년대에 이루어지고 있을까요? 이유가 여럿 있다고 생각합니다.

1. 교수의 주요 업무는 교육 활동이다

첫째, 미국 교수의 시간 활용도를 조사한 결과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교수는 가장 많은 시간을 강의에 투여하고 있다는 지극히 당연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연구중심대학에 계신 교수들 역시 마찬가지라는 통계입니다. 연구중심대학의 교수님이 30%를 연구에 투자하고 40%의 시간을 강의에 쏟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연구중심대학에서도 교수가 자신의 강의 기술을 향상하고 싶어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 통계는 왜 90년대에 들어와서 갑작스럽게 연구중심대학에서까지 교육에 이토록 많은 관심을 가지는가를 설명해주지 못합니다. 다른 이유가 분명히 있어야 합니다.

2. 연구와 교육의 경계가 없다

둘째, 미국 과학 재단의 5대 과제 중의 하나가 연구를 학부 교과과정과 연계시키는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사업입니다. 그러니까 연구와 강의라는 것이 서로 이분화 되어 서로 배타적인 관계를 이루는 것이 아니고, 이제는 한통속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메시지가 강하게 전달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연구와 강의라는 것이 분리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BK21이 한국에서 막 시작할 무렵, 99년도 봄에 교육부에 가서 특강을 한 적이 있는데, "연구와 강의라는 것을 둘로 쪼개놓고 본다는 것은 좋지 않다. 그리고 대학을 연구중심대학과 교육중심대학으로 분리하고 레이블을 붙이는 정책은 성공할 수 없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최근에 보니까 서울대학에서는 "종합연구중심대학"이라는 말을 쓰신 것 같은데 그것은 정말로 좋은 발상이라고 생각됩니다.

3. 연구력 강화는 목적, 방법은 교육 강화

세 번째 이유가 있습니다. 새시대에는 지식을 창조할 수 있는 '지식생산자'를 배출하는 것이 대학에서 해야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교수님께서 알고 있는 지식을 강의실에서 학생들한테 조금씩 떼어주는 지식 전달 위주 교육은 구시대 교육입니다. 학생들을 '지식소비자'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수님께서 지식과 학생들 사이에 '지식 중간도매상' 입장을 고수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앞으로 우리 한국 사회는 '지식생산자'들이 많이 필요합니다.

'지식생산자'하니까 "아, 그러면 연구를 많이 해야 되는 것 아닌가?"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지식창출시대에는 연구능력이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연구능력이라는 것은 과연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요? 저는 연구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창의력이 있어야 하고, 여러 지식을 서로 종합해서 새로운 지식으로 변신시키는 종합력이 있어야하고, 지식을 쓸모 있도록 응용할 수 있는 응용력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떤 정보와 지식이 문제를 풀 때 필요한가를 분별하고 판단할 수 있는 정보선별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럼 이 네 가지 능력은 어디서 얻어질까요. 대학 졸업하고 대학원에 입학하면 이런 능력이 저절로 생길까요? 아닙니다. 이런 능력은 초,중,고 때서부터, 특히 대학교 생활을 하면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학부교육을 무시하고는 연구력 향상을 도모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4. 교육도 연구다

여태까지 거의 모든 종합대학에서 교수의 업적을 평가할 적에 연구, 강의, 봉사를 대충 40:40:20 비율로 적용하였습니다. 그리고 연구실적은 주로 SCI 논문집에 실린 논문 수로 따졌습니다. 그런데 1990년에 어니스트 보이어라는 대 학자가 "Scholarship Reconsidered"라는 책자를 하나 쓰셨는데 미국 대학 사회에 대대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보이어는 학자가 할 수 있는 일(scholarship)의 영역을 네 종류로 늘렸습니다.

첫째, 지식을 발견하는 일(scholarship of discovery), 즉 SCI 논문집에 실릴 수 있는 기초 연구를 뜻하고 있습니다.

둘째, 지식을 응용하는 일(scholarship of application), 즉 회사의 문제를 풀기 위한 응용연구를 뜻합니다. 비록 응용연구의 결과가 SCI 논문집에 실리지 못하더라도 학자의 실적으로 인정해줘야 한다고 합니다.

셋째, 지식을 종합하는 일(scholarship of integration), 즉 학제간 연구라든지 여러 지식을 연계시키는 일을 뜻합니다. 우리는 학제간 연구가 중요하다고 말은 하지만 실천을 잘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만 알고 남들은 잘 모르는 연구를 많이 해야지 논문이 많이 실리기 때문입니다. 논문 심사자가 내용을 잘 이해 못해야 혹시 나중에 따지고 들지 않을까 귀찮아서 "에이, 이거 대충 실어주자"하겠지요. 반대로 서로 조금씩 알기 때문에 팀워크로 해야하는 학제적 연구는 논문에 잘 실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과물을 낼 확률이 적을 수 있다는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추진하는 학제간 연구 활동을 높이 평가해줘야 한다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넷째, 교육하는 일(scholarship for teaching)을 제시했습니다. 교수님이 몇 과목을 강의하고 학생 몇 명을 가르치느냐를 교육실적으로 따지는 것은 구시대의 발상이라고 합니다. 새시대의 scholarship of teaching은 교수가 "학생이 지식을 발견하고, 응용하고, 종합할 수 있도록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가르쳐줄 수 있을까"를 연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보이어의 철학을 반영하는 티셔츠를 소개합니다. 시험 볼 때 입는 옷인데 앞면에 학생들이 필요한 온갖 수식들이 가득 적혀져 있습니다. 그리고 내려다보면 제대로 보이도록 수식들이 아래위가 뒤집혀 적혀있습니다. 지식을 단지 달달 암기해서 좋은 성적으로 졸업해봤자 아무 쓸모가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식창출시대에는 지식을 응용하고, 여러 지식을 종합해서 새로운 지식으로 변신시키고, 정보의 가치를 판단하는 능력이 중요한 시대입니다.

이 티셔츠에는 또 다른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요즘을 팀웍 시대라고 합니다. 수식을 티셔츠를 입은 학생만 보면 그 학생은 win이고 다른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lose입니다. 그러나 요즘 시대는 팀워크의 win-win 시대입니다. 그래서 뒤에 있는 친구들도 보라고 티셔츠 뒷면에도 수식들이 똑같이 적혀져 있습니다. 이 티셔츠는 총장님께 드리겠습니다.)

5. 교육이야말로 진정한 "창업"이다

이 슬라이드는 연구와 교육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연구는 결론적으로 보면 돈을 받아다가 지식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그 반대로 교육은 지식이 학생을 통하고, 학생으로 하여금 돈을 벌게 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식이 학생을 통하지 않고 곧바로 돈으로 변해버리는 "창업" 붐이 불고 있습니다. 창업도 좋지만 가능하다면 지식이 학생을 통하여 부가 창출되도록 해주는 것이 바로 교육 기관인 대학에서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교육의 발전을 가로막는 문제점

결론적으로 지식창출시대에는 교육이 무척 중요합니다. "지식창출=연구=교육"이라는 등식이 성립되기 때문에 교육을 강화해야 합니다. 하자만 문제가 만만치 않습니다. 특히 한국에는 문제가 많습니다.

1. 초중고 학교붕괴가 대학붕괴로 이어짐

첫째, 초중고 학교 붕괴가 대학붕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제가 작년 이맘때쯤 교육부에서 특강을 하면서 "대학은 쉽게 들어가고, 졸업은 어렵게 하기"라는 교육부의 정책을 염려한 적이 있습니다. 발상은 참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가능할까요? 초중고 때까지 "띵까띵까" 놀던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와서 갑작스럽게 공부 할 이유가 있습니까? 지극히 위험한 정책이라고 생각됩니다.

2. 강의는 시간 강사의 몫이 됨

둘째, 대학 강의실에 시간 강사가 더 늘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미국의 예를 보면 예견이 가능합니다. 미국은 80년대부터 학생수가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대학의 예산이 쭉쭉 감소되었습니다. 그러나 2차 대전 직후에 대학원을 많이 키웠기 때문에 박사학위 소지자가 많이 배출되었습니다. 고급인력은 많은데, 예산은 떨어지고... 그러니까 교수님 한 분 모셔오는 것보다는 시간강사 다섯 명 채용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얄팍한 계산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시간 강사의 수가 부쩍 늘어났습니다. 70년대에는 시간 강사가 가르치는 과목이 한 20% 밖에 안되었었는데, 90년대에 와 가지고는 거의 반을 육박할 정도입니다. 시간 강사가 교수님보다 못 가르친다는 뜻은 아니지만 경험이 덜 있는 분들이 대학 교육을 주도한다는 것은 매우 위태롭습니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한국에서도 분명히 일어날 것이라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80년대의 미국의 인구 변화 추세가 현재 한국의 대학생 수 추세와 똑같기 때문입니다. 박사학위 소지자 증가, 업적평가제 도입, 연봉제 실시, 교수노조 등장 등 같은 사회 현상이 비슷한 결과를 예견해줍니다.

3. 교수업적평가제로 인하여 교육 활동 가치가 떨어짐

교수업적평가제와 연봉제는 교수님들이 더 더욱 교육에 신경을 쓰지 못하도록 만들어버립니다. 왜냐하면 교육실적과 연구실적을 따지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교육은 공산주의 같이 실시합니다. 강의를 잘하는 교수님이나 못하는 교수님이나 상관없이 다 똑같은 양의 강좌를 배분 받고있습니다. 그러니 교육부분에서 아무리 두각을 나타내도 평가 점수를 남달리 높게 받을 수 없습니다. 결국 서로 비슷비슷한 평가 점수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반대로 연구는 각자 능력에 따라 많이 할 수 있고, 또 많이 하면 많이 하는 만큼 평가 점수가 무한정 올라갑니다. 따라서 업적평가를 해서 연봉제나 승진을 결정할 경우에는 최종 점수에 차이를 주는 연구분야에 교수님들이 신경을 쓰게 되어 있습니다. 강의는 상대적으로 소홀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4. 교육을 담당하는 교수 수가 줄어들게 됨

대학이 지금 아무리 자금을 많이 모으고, 외부에서 지원을 받아도 강의를 담당하는 교수님의 수는 그다지 불어나지 않게 되어있습니다. 다시 미국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50년대에는 행정이 차지하는 대학 예산 비율이 30%가 안되었습니다. 하지만 연봉제와 교수업적평가제를 대대적으로 실시한 80년대 끝에 가서보니까 행정에 들어가는 예산이 엄청 늘었습니다. 이유는 연봉제를 실시할 경우 교수님은 연구와 강의만 전문적으로 하는 특공대와 같게 되고, 위원회 활동을 기피하기 때문입니다. 연봉제를 실기하기 전에는 교수님이 학과 살림도 맡아 하셨고 위원회 활동도 많이 참여하셨는데, 교수업적 평가제 하면 그렇게 할 겨를이 없게 됩니다. 그러니 대학 살림을 꾸려 나갈 분, 즉 행정을 전문적으로 하실 분들이 대거 필요하게됩니다.

행정직원과 보직교수의 수는 불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 결과 새로 교수님을 많이 뽑아도 강의를 할 수 있는 교수님의 수는 상대적으로 불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서는 80년대에 교수는 6% 증가했는데, 보직 교수와 행정직원은 47%나 증가했습니다. 한국에서도 2002년도부터는 연봉제를 대대적으로 실시하면 같은 결과를 가지고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5. 보직교수와 일반교수 사이가 대립적 관계로 변함

마지막으로, 가장 심각한 문제는 행정과 일반 교수님 사이가 대립적인 관계로 발전하기 쉽다는 점입니다. 꼭 그렇게 될 필요는 없는데, 그렇게 되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교수노조까지 등장하지 않습니까?

이런 여러 가지 어려움을 크게 두 가지 문제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교육'이란 거대한 개념의 "Identity Crisis"와 구시대 교육 행정 방법으로부터 비롯하는 "Administrative Paralysis"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식창조시대 대학의 핵심 센터

그러면 어떤 가능성이 존재할까요? 저는 나름대로 교육개혁 핵심 영역을 네 가지로 나누어 놓고 있습니다. 대학 구조에 대한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고, 교과과정도 우리가 대폭 개선해야 할 것입니다. (미국서는 80년대에 지식기반사회로 들어가려고 많은 개혁을 했습니다. 그래서 미국 대학의 90%가 80년도에 교과과정을 다 개선했습니다. 이 노력은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학생에 대한 개념도 변해야 할 것이고, 그리고 행정 개혁도 시급합니다. 이 모든 것들을 나머지 시간동안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교수학습개발센터와 직접 관계된 사항만 말씀드리겠는데, 저는 지식창조시대의 대학에서는 세 가지의 센터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 Teaching 센터

세 가지 핵심 센터 중의 하나가 바로 오늘 우리가 축하하는 교수학습개발센터입니다. Teaching center의 목적과 활동은 강 교수님께서 자세히 소개하셨기 때문에 제가 따로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비디오 피드백 같은 프로그램은 하버드 대학에서도 매해 무려 200명 이상의 교수와 강사들이 이용할 정도로 매우 효과가 높은 프로그램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서울대 교수학습개발센터에서 비디오 피드백을 해주실 이희원 선생님, 정연순 선생님 그리고 차인숙 선생님, 제가 보기엔 대단한 실력자들입니다. 아마 이분들로부터 자문을 받으시면 교수님의 강의 평가가 1년 안에 1점 높아질 것을 장담합니다. 이용해보시길 바랍니다.)

저는 이 교수학습개발센터가 설립되었다는 사실을 아주 큰 사건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저는 이 사건을 행정개혁이라는 차원에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여태까지 행정은 교수님들에게 연구 많이 해라, 강의 잘해라 등 요구만 해오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교수님 쥐어짜기 위주 행정입니다. 쥐어 짜이면 얼마나 괴롭습니까? 그러니까 행정하고 일반 교수님은 대립적인 관계로 변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센터의 설립은 행정이 쥐어짜기 위주에서 교수님들을 "지원하는" 정책으로 바꿨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쥐어 짜봤자 더 나오지 않아서가 정책을 바꾼 것이 아닐 것입니다. (교수님을 쥐어짠다 함은 교수님을 소모품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대학이 교수님들한테 "투자"를 하겠다는 매우 긍정적인 사고의 변화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이 대단히 의미 있는 날이라고 평가합니다.

재삼 강조하지만, 강의지원센터 설립은 교수님께 구체적인 도움을 줄 것이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합니다. 연구중심대학에서 교육을 중요시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구현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대학 구성원들이 대립적 관계에서 서로를 위하는 협력 관계로 발전시켜 줄 것입니다.

2. 학습센터

Teaching center의 효력은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교수님께서 아무리 강의지원센터에서 도움을 받고 교수법을 터득하셔도 새시대 학생들을 잘 가르친다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지금 교수님께서 눈을 감고 교수님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을 상상해 보십시오. 매우 다양한 유형이 보이지 않습니까?

학생들의 다양화는 예전에도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정도가 엄청납니다. 이때까지 한국 대학에서는 학생들이 수능시험 점수로 딱딱 끊어서 들어오니까 한 반에 들어온 학생들의 실력은 엇비슷합니다. 성격 차이가 있을 뿐 지적 능력과 두뇌 능력은 다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 교수님께서 그 강의실의 평균을 고려하며 강의하시면 충분히 효과적인 강의를 하셨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변화무쌍한 입학 기준과 획기적인 학생 선발 정책 등으로 인해 무척 다양한 능력의 학생들이 입학하게 됩니다. 같은 강의실 안에 정말 준비가 잘된 학생이 있는가 하면, 아주 힘들어하는 학생들도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교수님이 아무리 고난도 교수법까지 통달했어도 모든 학생을 만족시킬 수 있는 교육을 하시기가 정말 벅찹니다. 그래서 teaching center 이외에 또 하나 필요한 것이 learning center(학습센터)입니다.

학습센터의 주요 사업은 학생들의 학습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전공분야의 공부는 물론이거니와 이차적인 학습 내용도 도와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학생들이 리포트를 많이 써야 하는데 학습센터에서 글쓰기 지원도 해줄 수 있습니다. 또 협력시대에 커뮤니케이션 기술과 팀웍 기술은 모든 학생들이 습득해야 할 중요한 기술입니다. 지도력(leadership skills)도 매우 중요한 기술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까지 교수님께서 모든 학생들에게 강의실에서 일일이 가르쳐 줄 수는 없겠지요. 이런 틈새를 학습센터에서 보충해 줄 수 있습니다. 학생들의 발전을 위해 이런 것 마저 신경 쓰는 학교가 바로 학생중심교육을 실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한국 대학을 40군데를 방문해 봤는데, 어느 대학에 가더라도 딱 들어간 순간 학생중심이라는 느낌을 받지를 못합니다. 물론 학교 전체가 그냥 다 학생을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학생중심대학이라는 느낌을 주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교육 활동이 주로 이루어지는 강의실을 보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교수님(teacher)이 주체가 되어 교수님의 목소리(가르침, teaching)만 들리는 강의실은 완벽한 teaching center입니다. '학습센터'라 함은 물리적 (하드웨어적) 장소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학생중심교육이 철학적 (소프트웨어적) 개념이듯이 '학습센터' 역시 "learning centered"라는 교육 개념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학습센터 위주 (learning centered) 교육 철학은 새시대의 구호인 "평생교육"과도 일치합니다. 이 말의 뜻을 통계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84년도에는 한국에 직종이 불과 1,200개 밖에 안됐어요. 그러나 물과 10년만에 14,000개로 불어났어요. 미국 노동부가 92년도에 집계한 직종 수는 120,715개나 되었습니다. (98년도에는 40만개.) 이제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직종에 일하기 위해서 대학 공부를 시작하는 것은 무의미해졌습니다. 졸업하고 나갈 즈음에는 학생이 입학할 당시 상상도 못했던 직종이 무수히 많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구시대적 직종만 고려 할 수밖에 없다면 얼마나 비참합니까. 학생이 대학에 들어와서 각자 유니크(unique)한 직종을 창조해 나가게 도와주는 곳이 바로 평생교육을 실시하는 대학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교수님이 교실에서 학생을 지도한다는 것을 떠나서 학생 스스로가 자기 교육에 책임을 질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평생교육, 학생중심교육과 일치하는 교육입니다. 이런 교육을 실시하기 위해서는 대학 교육관이 필시 "learning centered"라는 교육개념으로 개선되어야 할 것입니다.

3. 지연(知緣)센터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지식창조시대의 대학에는 지연센터가 필요합니다. 이 필요성은 제가 공학교육 논문을 살펴보면서 느꼈습니다. 전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공학교육학회지에 매해 500편의 논문이 실린다고 했는데, 96년부터 99년도 4년간 나온 2000여 편의 논문에 실린 키워드를 조사해보았습니다. 무려 70%가 되는 1388개의 논문의 키워드가 통합 또는 종합입니다. 그래서 저는 미국 대학 교육의 개혁 핵심 전략이 integration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통합과 종합이라는 단어는 integration이라는 말로 완벽하게 일치가 되지 않는 번역입니다. 그래서 integration의 뜻을 정확히 알기 위해 비슷한 단어를 찾아보았습니다. Network, cooperation, teamwork, coalition, interaction 등 그런 단어들이 키워드로 나왔습니다.)

Integration의 방법도 조사해 보았습니다. 교과 내용을 종합하는 경우도 있고, 교육 경험 자체를 종합할 수도 있고, 학생을 팀워크로 가르치는 것도 integration의 방법입니다. 교수님을 또 팀워크 짜는 수업도 있습니다. 사회, 산업, 학 합동을 만드는 것, 또 대학간의 유대를 만든 것, 그것도 외국의 대학과 함께 협동하는 프로그램 등 모두 열 종류의 방법이 있습니다.

저는 이 논문을 쭉 살펴보면서 과연 어떤 것이 가장 쉽고 어떤 것이 가장 어려운가를 고려해보았습니다. 그 결과를 복잡성을 나타내는 축과 수월성을 나타내는 축으로 이루어진 도표에 그려보았습니다. 교과과목 내용을 종합하는 것은 사실 쉽습니다. "짜집기" 식으로 해도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참다운 학제간 연구라든지 다학문 교육 같은 것은 정말 힘들고, 더 나아가서 다른 대학과 연결된 교육한다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인력도 많이 필요하고 상당히 복잡합니다. 그러니 다른 나라의 대학과 같이 협동한다는 것은 쉽지 않겠지요. 그러나 가장 어려운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니까 가장 어려운 것은 이 스케일 밖에 나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교수님들의 팀워크입니다.

팀워크가 제대로 안 되는 이유를 일반적으로 교수들의 이기주의에서 찾고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사회적 현상의 원인을 개인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그 대신 사회적 원동력에서 이유를 찾아야 합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지금 한국에는 경쟁력이라는 단어가 너무 왜곡되어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경쟁력 강화 하면서 온 나라를 경쟁 도가니로 몰아 세우고 있는데 이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이라고 생각됩니다. 경쟁력이라는 것은 나타나는 결과입니다. 그 결과를 얻기 위한 방법은 절대로 경쟁이 아닙니다. 경쟁력은 결과, 그 결과를 얻기 위한 방법은 협력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많은 제도가 다 서로 뿔뿔이 흩어지고 서로 경쟁하는 시스템으로 변하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매우 위험한 생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한국 대학에는 엄청나게 좋은 새 빌딩들이 많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산학협동연구소 등 학문위주가 아니고 기능위주로 설립된 빌딩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는 신기술 개발, 자동차공학, 생명과학 등 구체적인 학문위주 빌딩들입니다. 이런 빌딩 인프라는 필요합니다. 하지만 모든 대학인들이 서로 어울리며 정보와 지식을 나눌 수 있는 장소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즉 교수, 학생, 직원 모두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센터가 필요합니다.

지연센터의 필요성은 새시대의 별명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정보화시대, 지식기반사회시대, 지식창출시대, 무한경쟁시대 이외에 network 시대라고 하기도 합니다. 이 중에 적어도 network 만큼은 한국에 잘 되어 있습니다. 학연, 혈연, 지연이 다 새시대가 요구하는 네트워크이기 때문입니다.

미국 동부의 어느 명문대학에서 획기적인 과목이 신설되었다고 신문에 났습니다. People networking이란 과목으로 인연(因緣이 아니고 人緣)을 관리하는 기술(사람을 알아두고, 관계를 유지하고 이용하는 기술)을 가르쳐 줍니다. 이렇듯 미국에는 부족하기 때문에 지금부터 가르쳐서 구축하고자하는 networking을 지금 우리 한국에는 나쁘다고 다 없애자고 합니다. 사실은 너무 잘 되어 문제를 만들기도 합니다만 networking 철거는 시대 흐름에 역행입니다.

학연, 혈연, 지연 다 중요합니다. 없애려고 해도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없애려는 노력 대신 이 세 가지 networking 이외에 하나를 더 추가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지연 (지식을 공유하는 사람끼리의 연대)입니다. 알 지(知)자의 지연만 첨가하면 아주 "왔다!"입니다. 우스개 소리가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네트워크가 중요한 시대입니다. 그래서 teaching center, learning center와 함께 지연센터라는 것을 한번 구성해 보시라고 권합니다.

소위 도서관이라는 곳이 그런 역할을 어느 정도 해 왔는데 지금 도서관은 역부족입니다. 지금 도서관은 지식 창고이지 지연의 발생지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도서관은 하드웨어적 지식을 만나는 곳입니다. 이제 지식창술시대의 대학에는 소프트웨어 지식(즉, 사람)을 만나는 장소가 대학 중심에 세워져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맺음 말

한국이 개혁을 이렇게 힘들어하는 이유 중 하나가 마치 개혁을 해야하지만 우리한테 희망이 올 것이라고 많이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희망을 가질 때 비로소 개혁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개혁은 희망의 결과라고 봅니다.

지금 서로 비판하고 있지만 별 소용없습니다. 한국 현실을 비판하고 외국의 제도를 수입하는 것 역시 별로 좋지 않은 방법입니다. 왜냐면은 우리가 개혁을 성공하려면 남의 장점을 본 따 가지고는 약간 성장할 수 있어도 크게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개혁을 하려면 우리의 장점을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정말 원하는 것은 한국 사람들이 서로 비판만 하지 말고 서로의 "장점 찾기"를 전국적으로 국민 운동을 벌인다면 아마 개혁이 순식간에 성공하리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서로 다른 학과를 비판하지 말고, 서로 다른 학과의 장점 찾기를 해야 합니다. 각 교수님께서도 할 일이 있습니다. 옆방에 있는 교수님의 장점 찾기, 또 보직교수의 장점 찾기, 보직교수는 반대로 일반교수의 장점 찾기를 시작해야 합니다. 각 가정에서도 장점 찾기를 해야합니다. 우리 아이들한테 공부타령 그만하고, "너, 아직도 놀고 있냐? 공부 안하고 뭐하냐"하며 야단치는 대신 우리 자녀들의 장점을 찾고 후원해주어야 합니다. 공부 타령하지 않고도 충분히 좋은 교육을 시킬 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이라는 곳은 희망을 심어주는 곳이어야 합니다. 실패하면 벌주고 야단치는 곳이 아니어야 합니다. 교육 개혁이 성공해서 지식창출시대 이룩하려면 서로 희망(vision)을 나눠가져야 합니다. 희망이 있는 대학이 바로 지식창술시대에 비전(vision)이 있는 대학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에게 많은 시간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